<장길산> 해낼 줄 알았어  2008.02.29 조회:4741
황 석 영
내가 백상 장기영 선생을 만나뵌 것은 1974년 봄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벌써 28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 평론가 이어령 선생이 《문학사상(文學思想)》이라는 월간 문예지를 내고 있었는데, 우연히 놀러 갔다가 연재 이야기가 나오고, 나는 당시에 염도에 두고 있었었던 조선조 시대의 의적에 관한 자료를 최근에 보게 된 것을 이야기 했었다. 나는 그때에는 그저 중편소설 정도의 자료를 소화할셈이어서 잡지에 서너 번에 나누어 싣거나 아니면 전재를 하는 식으로 얘기가 되었는데, 이어령 선생이 다음 달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자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나도 잊어버리고 말았었는데 나중에 한국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게 된 당시의 문화부 기자 외우 병우영 형이 연락을 해왔다. 이영희 문화부장이 만나자는 얘기였다.
얘기인즉 이렇다. 이어령 선생은 ‘장길산’에 관한 소재가 무엇인가 대단한 물건이 되리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이영희 문화부장 선생과 만난 자리에서 내이름과 일감에 대한 얘기를 전하고 한국일보에서 뭔가 새로운 연잿거리를 찾고 있다면 황 아무개를 만나 보라고 권유를 했던 모양이다.
당시의 한국 문단은 다른 부문이 모두 그랬듯이 아직 신민지 근대화 시대 정도의 시장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미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시집이 100만 부씩 팔리는 경이로운 출판문화 국가로 성장을 했지만, 당시에는 일본 것을 중역한 전집 덤핑류나 야담과 저급한 성인 대중소설 등이 야시장과 동대문 도서 도매상을 통화여 만화 대본소에 나갈 정도였다. 이른바 본격문학의 단행본과 창작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70년 중반이 넘어서야 서점에서 겨우 독자층을 확보하던 시절이었다.
글을 쓸 지면도 종합지까지 합쳐서 두어 군데에 그때 막 《창작과 비평》이나《문학과 지성》같은 계간지가 일부 독자를 확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시에 시인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소설가들도 거의 모두가 ‘부업’으로 주말이나 휴가철에 단편 두어편을 쓰고 나머지 기간은 신문사, 잡지사, 출판사 학교 같은 데서 다른 일로 월급쟁이를 해야만 처자를 먹여 살릴 수가 있다. 당시에 나보다 조금 먼저 출발을 했던 김승옥의 경우에도 창작집을 내고 그때로서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 3,4판의 중쇄를 하며 떠들썩했는데도 ‘전업’을 하기는 어려워서 영화 대본을 쓰는 일로 메꾸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온전한게 지켜내면서 ‘전업작가’노릇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출발할 때부터 글 쓰는 일을 나의 평생의 생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전업작가 1세대’이다. 나는 근대 이래 현대문학을 발전시켜 나아갈 첫 번째의 요소가 글쓰는 주체의 ‘프로의식’을 첫 번째로 꼽고 있었다. 글 쓰는 일이 다른 모든 생업을 가진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여 좋은 제품을 생산해내야 한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한 물건에 대한 책임 의식과 더불어 사람에 관한 일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도 철저해진다고 여겼다. 당시에는 아직 ‘글을 판다’는 생각이 ‘선비답지 않은 짓’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일종의 ‘허위 의식’으로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프로 작가’로서 당시의 신문사주였던 장기영 선생을 만났던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 아직 새파란 신인작가로서 겨우 무명의 이름자를 면하기 시작했다. 라는 것은 그때 겨우 첫 번째의 창작집인 《객지》를 막 출판했던 무렵이란 얘기다. 나이도 만 서른 한 살 불과한 청년이었다. 그러니 무명에다 직장도 갖지않고 자기 책을 사 줄 독자층도 형성되지 않은 청년 작가가 가난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영희 부장은 그때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 다만 백우영이가 당시에 내 단편집을 읽고서 ‘해낼 수 있을것’이라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영희 부장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나를 만나고 나서 무조건 회징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사전에 장기영 사주가 어떤 분인지, 성격이 어떠한지, 소설이나 문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아무런 귀띔도 받은 바가 없었다. 다만 신문사계단에 특유의 격언 비슷한 문장들을 써 붙인 모양을 보고 어떤 ‘젊은 활기’와 같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삼국지에나 나올 법한 전장의 곳곳에 붙어있는 사령관의 격문처럼 보였다. 지금 같으면 현대 경영학의 조직관리니, 행정이니 조용하고 야멸차고 합리적으로 전달이 되겠지만, 뭔가 멀리 있는 냉정한 안경테 너머의 표정이 아니라 바로 함께 뛰며 외치고 있는 현장의 ‘직속상관’같은 인상이었다.
회장실에서 사주는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 차림에 소매를 걷어부치고 무슨 큰 목소리로 전화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나에게 첫마디가 바로 자기 소파 오른쪽의 가까운곳에 자리를 정하여 앉으라는 말부터 했다.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기억나는 대로 쓰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앉어. 나이가 몇이오?”
“서른 하납니다.”
“젊어서 좋군. 직장은”
“집이오. 글 쓰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잘 쓰지 않으면 밥 안생기겠군.”
주위에 앉았던 간부들은 그때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그런데백상 선생은 표정이 아주 진지했다. 선생이 무슨 얘기를 쓸 거냐고 해서 옛날 도둑 얘기라고 했더니 다음 달부터 시작을 하자고 한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적어도 6개월은 준비 기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료도 지금 충분치 못합니다.”
“3개월로 줄일수는 없을까?”
“기간도 그렇지만 자료 구입비가 필요합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원고료 이외에 자료비를 달라는 것은 아마 당시로서나 현재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백상 선생이 흔쾌히 대답했다.
“지금 당장 주도록 해. 그리고 살 수 없는 자료들은 기자들을 붙여서 서고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오는 한이 있더라도 충분한 지원을 해야 돼.”
선생은 그 자리에서 수표를 내주었는데 내가 액수를 말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당시의 가치로 아마 서울 변두리 국민주택 한 채 값의 절반쯤 되었으리라. 나에게는 그의 흔쾌한 태도와 믿어 주는 넉넉한 마음이 인상에 깊이 남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끝난 얘기가 아니다. 물론 이튿날부터 인사동과 청계천 일대를 뒤지며 고서와 절판된 연인본들을 찾으러 다녔고, 기자들은 내가 적어준 대로 규장각에 붙어 살며 수십 권의 원전들을 사진으로 일일이 책장을 들쳐 가며 찍었다. 당시에는 복사기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십수년 전까지도 백상 선생이 지시하여 만들어준 흑백 사진이 붙은 앨범 자료집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를 모으던 중에 내가 나라마다 안주머니에 자금을 지니고 고서점가를 돌아다닌 다는 소문이 짓궂은 문인들 사이에 돌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딱 걸려서 술한잔을 사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번에는 내가 발동이 걸려 한 보름 사이에 부어라 마셔라를 하다보니 호주머니가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나는 술이 깬 어느 날 오전에 고민을 하다가 하는 수 없이 회장실로 쳐들어갔다. 물론 간부의 안내나 사전 연락도 없었다. 무조건 문 앞의 비서들에게 회장님 계시냐고 하니까 당연히 약속이 되어 있는줄 알고 안으로 들였다.
“잘 되어 가는가?”
“예,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우들 등쌀에 자료비가 모두 술값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음, 술 값은 안 줬지. 그럼 이번에 진짜 자료비가 나가는 걸로하고, 이번에도 마시면 아예 없던 일로 하겠다.”
“좋습니다.”
선생은 이번에도 선선히 봉투에도 담지 않은 수표를 내주면서 말했다.
“젊은 작가가 술도 좀 먹어야지. 그렇지만 몸 생각도 해라. 이게 내가 잘 가는 술집 명함인데, 거기가서 내 앞으로 달고 먹어. 자료비는 꼭 책 사는데 쓰고.”
이 얘기는 기자들이나 문인들 사이에도당시에 소문이 자자했던 얘기다. 나는 어째서 일선 기자들이 술자리에서 자기네 사주를 허물없이 ‘왕초’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여튼 이런 곡절을 겪으면서 <장길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힘에 부치기도 하고 당시에 저항이 시작되던 유신초기라서 ‘딴짓’ 하느라고 몇 번의 펑크가 났지만, 사실은 선생이 작고하신 뒤에는 황 아무개의 ‘악습’이 되어 버려서 기자들의 원한 맺힌 악담속에서 명이 길어지게 되었다.
펑크가 몇 번 나고 나서 이영희 부장은 펄펄 뛰고 난리가 났고, 나는 회장님이 부른다고해서 다시 마주 앉았다.
그런데 단둘이 앉아서 사주는 야단은 커녕 웃고 있었다.
나는 자네가 해낼 줄 알았어. 누구나 자기일에 자신감을 갖는건 아주 좋은 일이다. 하루 이틀 쓰다가 말것도 아니고 기왕에 하려면 아예 뿌리를 빼. 대작을 쓰게. 볓 번 연재 사고가 났는데, 어떻게 된거야?“
나는 그래도 힘에 부쳐서라고만 했지 글 쓸 시간을 다른 데 썼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선생은 당시에 조용하고 점잖은 장소로 바둑대회가 열리던 운당여관 특실에 내 집필실을 잡아 놓고는 느닷없이 차를 보내어 자료들을 실어 나르게 했다. 그렇다고해서 나의 호젓한 글쓰기 작업이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 역시 얼마 안가서 선후배글쟁이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불쑥 나타나서 자고 가는 놈에, 술병을 차고 들어오는 놈에, 떼거리로 몰려와 시켜다 먹고 내 앞으로 긋고 가는 놈에. 그러나 하여튼 거기서 내 초기 작업 두권의 구도가 선명하게 잡혔다.
백상 선생은 내가 짐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 다른 조처를 취했다. 아무리 그래도 집이 좀 괜찮은 장소가 되려면 원고료를 많이 주어 조용한 집필실을 가진 집을 사야한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당시에 장안에 연재되던 선배 작가들 보다 훨씬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
그 뒤로도 선생은 불쑥 아무 때나 나를 찾곤 했다. 소설 얘기는 연재 기간 중에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술 얘기, 영화 얘기, 외국 여행담 등속이었지만 선생을 만날 때 마다 내가 인상이 깊었던 것은 당신과 일로써 맺게 된 관계에 대한 ‘신뢰’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뒤 선생을 ‘왕초’라고 부르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언제나 공사석을 막론하고 ‘백상선생님’이라고 호칭한다. 선생이 지금도 내게 놀라운 것은 그는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신문이 독자를 위해서 ‘읽을거리’를 어떻게 관리해내야 하는가를 알던 지사적 문화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넉넉한 지원과 신뢰가 없었다면 그 다사다난한 시대에 아무 죄도 없는 기자들을 괴롭히며 어떻게 <장길산>을 10년동안이나 연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방에 내려가서 파묻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을 때 백상 선생은 작고했다. 뒤이어 아드님들이 회장직에 오르고서도 <장길산>의 완결은 고인의 유지인 듯이 된셈이어서, 나는 몇 번씩 쉬면서도 한국일보의 지치지 않는 기다림에 부응하여 겱국은 작업을 끝냈다.
나는 마흔 두 살이 되었다.
사실은 그때 나는 10권의 책을 싸들고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 술 한잔을 부어 드렸어야만 했다. 광주 항쟁 이래의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덧없는 세월에 그런 생각을 슬그머니 묻어버렸던 셈이다. 이제 인생의 이런 일 저런일들을 겪고 철이 좀 들어서 육십 중늙은이가 되어서야. 또 이런 글의 청탁을 받고서야, 물처럼 흘러간 세월 속에서 ‘사나이’의 인연을 생각하면서 깊이 회한에 잠긴다.
선생님, 저는 죽는 날까지 소설로써 아쉬움이 없는 인생을 위하여 ‘뿌리를 뽑고야’ 말겠습니다. 백상, 그 이름이 그립습니다.



略歷 △1943년생 △"立石附近'으로 新人文學賞 수상(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塔' 당선(70년) △중단편집 '客地' 출간 (74년)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張吉山' 연재(74~84년) △光州民衆抗爭記錄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간행(85년) △장편소설 '武器'의 그늘 발표, 萬海文學賞수상 (87년) △1989년 3월 민족예술인총연합 대변인으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 이후 5년간 베를린, 뉴욕등지에서 亡命 △방북기행문 '사람이 살고 있었네' 발표(90년) △귀국하여 구속 수감됨. 7년형을 받음 (93년) △1998년 3월에 특별사면으로 석방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丹齋文學賞수상 (99년) △黃晳暎 中短篇全集 전 3권 출간. 戱曲 전집 출간 (2000년) △장편소설 ’손님‘으로 大山文學賞수상(2001년)